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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호나우두(Ronaldo) 어떤 선수 였나?

스포츠

by 심쿠웅 2017. 7. 15.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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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호나우두(Ronaldo)

국적:브라질

출생:1976년 9월 22일(라우데자네이루)

키:181cm

주로 쓰는 발:오른발

포지션:스트라이커


-역대 소속팀-

*유스

테니스 클럽 바우케이레(1986~1989)

소셜 하무스 클럽(1989~1990)

상크리스토방 FR(1990~1993)


*프로

크루제이루 EC(1993~1994)

PSV (1994~1996)

FC 바르셀로나(1996~1997)

인테르나치오날레(1997~2002)

레알 마드리드 CF (2002~2007)

AC밀란(2007~2008)

SC 코린치안스(2009~2011)


*별명:R9, FENOMENO, 축구황제


R9은 나이키가 세계 축구시장의 중요성을 깨닫고 1990년대초 주가가 한창 오르던

호나우두를 앞세워 마케팅을 하게 된다.

R9이라는 네이밍을 통해 수많은 모델을 내놓았는데

그 일환으로 생긴것인 머큐리얼 시리즈다.


그 이후 호나우지뉴가 있었고 지금은 CR7인 크리스티아노 호날두가 메인으로 있다.



FENOMONO는 이탈리아 시절 축구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호나우두를 상징하는 고유 명사로 사용됬으며

영어로 풀이하면 경이러운 존재라는 뜻이다.


호나우두는 빈민가 출신으로 대부분의 브라질리언의 축구인들은 어린 시절 유일한 희망은 축구공이다.

벌어진 앞니 때문에 내성적인 성격이였는데 축구공만 잡으면 생기가 넘쳐났다고 한다.


1986년 처음 유소년 축구클럽에 입단하고 엄청난 득점력을 보이면서

지역전체 소문이 퍼져 유명해 졌다.

그 이후 1990년 14세의 나이로 브라질 2부리그 상 크리스토방과 계약을 맺었고

당시 감독은 경기가 풀리지 않을때는 '무조건 호나우두한테 패스해!'라고 할정도로 

골 폭격은 2부리그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원래는 어린 시절 응원했던 플라멩구에 입단하기 위해 초정장을 가지고 갔는데.

가는 도중 깡패를 만나 초청장을 뺏겨 못갔었다.



그 당시 브라질 대표 레전드 선수인 자일지뉴가 호나우두의 재능을 알아보고

후나우두를 지원하게 되는데 브라질 U-17대표로 선발도 되고

1993년 남미 청소년 대회 득점왕도 차지했다.


이러한 활약덕에 브라질 명문 클럽들은 호나우두 영입 경쟁을 하게 된다.

크루제이루가 영입에 성공하게 되고 유스팀에서 가볍게 활약을 하면서

16살의 나이에 1군에 합류하게 된다.


1993년 성인 대표팀에 뽑히고 1994년 만17세의 나이로 A매치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크루제이루에서 60경기 58골을 넣으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시작해서

대표팀 선배인 호마리우의 조언을 듣고 PSV에 이적하게 된다.



PSV는 에레디비지를 찢어 놓았던 호마리우의 좋은 추억을 갖고 잇어서

호나우두도 호마리우 처럼 활약해 주길 기대했다.


역시나 데뷔시즌에(94/95시즌) 32경기 30골을 몰아쳤다.

하지만...95/96시즌에 무릎 수술을 받게 되면서 부상의 악몽이 여기서 부터 시작했다.

부상인 와중에도 19경기 12골을 넣긴 했다.


부상회복후 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 자신의 존재를 전세계에 알려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된다.




1시즌밖에 활약하지 않았지만 그 임팩트는 상당했다.

49경기 47골을 퍼 부으며 팬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기록은 메시가 10/11시즌 최다골을 깨기전까지 계속 유지 되었다.


그 해에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고

발롱도르는 2위를 차지했다.


이떄 나이는 20살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게 스페인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은 계속 보길 원했으나

호나우두는 팀을 떠나고 싶어 했다.


브라질에서 떠나기전부터 러브콜을 보내왔던 인테르 구단주 모라타가 있었다.



인터밀란 이적후 활약도 대단했다.

첫시즌부터 32경기 25골을 퍼붓고 리그 최우수 외국인 선수, 리그 MVP선정을했고

UEFA컵 우승컵도 들었다.

94년 이후 4년만에 인테르는 우승컵을 들었다.


대단한 이유는 당시 세리에A는 공격수의 무덤이라 불리울 정도로

견고한 수비와 거친 몸싸움으로 유명한곳이였다.

하지만 호나우두는 상대 수비진을 농락하면서 사기캐로 군림하였다.


1997년 또 한번 피파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고 

발롱도르 역대 최연소 수상도 기록하게 된다.


하지만 계속 되는 부상으로 인해 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재활 센터에 보내게 된다.

첫시즌을 제외하고는 날려버린거나 다름없었다.


구단주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출전시간을 조절하면서 몸을 끌어 올린뒤

2002년 월드컵에 출전에 득점왕을 차지하고 부활을 알렸다.

인테르 팬들은 당연히 인테르에서 앞으로 계속 활약할 것이라고 믿었으나

팬들의 염원을 저버리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된다.



갈락티코 정책으로 이적하게 되면서 첫시즌 23골을 퍼부어 리그 우승을 하게 된다.

그 해에 피파 올해의 선수상, 발롱도르를 또 수상하게 된다.

(2002년 피파 월드컵 활약이 컸다)


역시 전설의 경기는 3샷 3킬을한 맨유와의 경기다.

챔스8강전에 3슛 3골로 맨유를 이기게 되는데 에릭 칸토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레알 팬들은 물론 맨유팬들도 경기가 끝난후 기립 박수를 했다


하지만 이러한 활약을 오래가지 못했다.

04/05시즌 체중이 급격히 늘어나게 되면서 경기력은 하락했다.

그 이유는 갑상선 저하로 인해 체중이 늘었났지만 또 다른 이유는 

식탐도 대단했다고 한다.

그 뿐만아니라 경기장안밖으로 게으른 태도를 보이며 팬들로 부터 비난을 많이 받았다.

 반니가 영입되면서 호나우두는 점점 잊혀지게 된다.


06/07시즌 AC밀란으로 이적

당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던 AC밀란 의료진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체중감량에 성공을 하고 잔 부상을 치료 했다.

14경기 7골 4도움을 기록해 부활을 신호탄을 당겼으나 07/08다시한번 부상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계속해서 부상이 재발하게 되고 AC밀란은 끝가지 부활을 지원하며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브라질에서 마약, 섹스 스캔들이 터지게 되면서 AC밀란은 재계약을 포기하게 된다.

지금은 잊혀졌지만 매춘부 3명을 고용해서 코카인을 사오라고 시켰다고 한다.

당시는 엄청난 큰 사건이였다.


2008년 12월 귀향을 하게 되면서 코린치안스로 이적했다.

순수하게 축구를 즐기고 싶어했다.

09시즌에 대표팀 선발 얘기가 나올정도로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10시즌에는 

느리고 부지런하지 못한 플레이로 팬들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2011년 2월 14일 은퇴를 하게 된다.





역대급 드리블, 슈팅, 라인 브레이킹, 피지컬 스트라이커에 필요한 모든 요소가 있던 사기 스트라이커였다.


181CM의 키의 단단한 선수가 카카보다 빠르고 마라도나처럼 드리블 하며 

아드리아누처럼 슛을 때렸다.


그냥 사기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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