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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재능, 안토니오 카사노(Antonio Cassano) 어떤 선수 였나?

스포츠

by 심쿠웅 2017. 7. 22.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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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안토니오 카사노(Antonio Cassano)

출생:1982년 7월 12일(바리)

포지션:스트라이커

키:175cm

주로 쓰는 발:오른발


역대 소속팀

AS바리(1999~2001)

AS로마(2001~2005)

레알 마드리드 CF(2005~2008)

UC 삼프도리아(2008~2011)

AC밀란(2011~2012)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2012~2013)

파르마 FC(2013~2015)

UC삼프도리아(2015~2017)

헬라스 베로나(2017 은퇴)



빈민가에서 태어난 카사노는 어릴때부터 좋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카사노 어머니가 카사노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버리고 도망치게 되면서 홀어머니 밑에서 컸다.


그렇게 유명한 축구선수가 되고 아버지가 찾아왔지만

카사노는 욕하고 때리면서 내쫓았다고 한다.


AS바리에 입단제의가 들어와 입단하게 되고

1999/20 시즌 18세의 나이로 1군팀에 데뷔를 했다.

인테르 상대로 상대 수비수를 무력화시킨 플레이로 이탈리아는 들썩 거렸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자연스럽게 빅클럽이 관심을 가지게 됬고 

2001년 AS로마로 이적하게 된다.




토티와 엄청난 콤비 플레이를 보이면서 최고의 활약을 이어갔다.

토티는 '함께 뛰었던 선수중 최고의 테크니션'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역대 베스트에 들어가는 콤비로 활약하면서 01/02, 03/04시즌 준우승을 했다.

테크니션으로 뛰어난 두 선수가 1선과 2선을 왔다갔다 하면서 

플레이를 펼치면 눈이 즐거울 정도였다.


당시 감독이였던 아버지처럼 여긴 카펠로 감독의 말을 잘 들었지만

카펠로 감독이 떠나면서 또라이 기질이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감독들은 컨트롤하기가 점점 어려워 지면서 

많이 다투게 되면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되는데


당시 토티에게 한마디 없이 이적해서 토티는 많이 서운했다고 한다.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생황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당시 카사노의 은사인 카펠로가 감독이여서 잘 컨트롤할줄 알았지만

그때 당시의 똘끼는 절정이였던 시기라 카펠로 마저도 서로 다투게 됬다.

방송에서 카펠로 감독을 뒷담화를 하는등 

카펠로에게 징계를 받기도 하고 체중증가할때마다 벌금을 내는 조치도 당하게된다.


그렇게 카사노는 AS로마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로마는 관심이 없었고

시즌중 삼프도리아로 임대를 가게 된다.




삼프도리아로 임대이적후 복잡했던 여자 관계를 청산하고 

수구 출신 수구계의 가투소인 카롤리나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사람이 확 달라졌다.


토티-카사노 콤비만큼은 아니지만

지암파올로 파찌니와 콤보를 이루면서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보여주면서

카사노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걸 보여줬다.

그렇게 삼프도리아는 챔스진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정상인 카사노는 오래가지 못했다.

구단주와 큰 불화가 생기면서 팀에서 쫒길 지경까지 가게 되고

2011년 1월 AS밀란으로 이적하게 되고


그해 삼프도리아는 2부리그로 추락하게 됬다.



당시 AC밀란은 쉐드로프와 호나우지뉴가 나이가 들어 젊은 피가 필요했다.

이 두선수를 제외하고는 창의성이 있는 선수가 전무했기 때문에

서로에게 윈윈인 이적이 성사가 된것이다.


악마의 재능 답게 초반부터 좋은 활약을 펼치게 되고

즐라탄과의 호흡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게 되면서 밀란은 엄청난 공격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AS로마 경기후 원인불명으로 쓰러지게 되고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뇌경색이라는 소문이 나왔지만 AC밀란은 크게 부정을 하게 된다.

실제로는 심장에 구멍이 뚫려 수술을 하게 되고 몸을 회복하는데 집중을 한다.


회복후 유로2012대회에 대표팀으로 활약을 하게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90분을 뛰지도 못하고 망나니인 카사노를 합류하는데 

큰 반대가 있었지만 클래스는 여전했다.

여전히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탈리아는 결승에서 스페인이게 패하게 된다.


대회 종료 직후 인테르의 지암파올로 파치니와 트레이드로 이적하게 된다.



많은 팬들은 예상치도 못한 이적에 많이 놀랬다.

파치니도 비록 나쁘지 않는 공격수지만 카사노에 비해 활약이 미비했기 때문이다.


AC밀란 팬들은 분노를 했다.

심장수술후 재활까지 기다려 줬는데 라이벌팀인 인터밀란으로 이적했기 때문.

그래서 베를루스코니는 엄청난 욕을 먹었다.


시즌 초반에는 좋은 모습을 보였줬지만 후반기에는 체력이 떨어지면서 

부상도 겹치게 되었지만 그레도 36경기 8골 12도움이라는 좋은 활약을 했다.


하지만 시즌후 새로 부임한 마짜리가 카사노를 쓰지 않겠다고 해서

FC파르마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30살의 나이에도 루카 토니와 호흡을 맞추면서 좋은 활약을 펼치게 된다.

 11골 6어시를 하게 되면서 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체중감량까지 하면서 대표팀에 대한 열의가 있어 

드디어 월드컵에 나가게 됬지만 좋은 활약을 펼치진 못했다.


하지만 파르마는 14-15시즌 구단매각문제가 잘 풀리지 않게 되고

연봉도 받지 못하게 되면서 카사노는 자유계약으로 방출당하게 된다.


7개월동안 무적상태로 있게 되면서 좋은 추억이 있었던 

삼프도리아로 2년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15-16시즌에는 선발과 교체로 번갈아가 출전하면서 25경기 2골 5어시를 기록하면서 

별 사고 없이 지내는듯 했지만 역시나 구단 회상 대리인과 충돌이 생기면서 

또다시 계약해지를 요청해 무적신세가 된다.


그 이후 중국리그나 은퇴를 한다는 손문이 돌았지만

중국은 가기 싫고 세리에에 남고 싶다고 말하면서 커리어 마지막팀인 베로나로 이적하게 된다.


하지만 계약한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몸상태가 좋지 않아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

구단측은 기다려 주겠다고 하지만 은퇴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



별 사고 없이 제대로 성장했다면 역대급 이탈리아 판타지스타의 계보를 이을 수 있었다.

전방 공격수이지만 창의적인 패스로 득점보다 어시스트가 빛이 났던 선수다.

그래서 중앙뿐만 아니라 측면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기도 했다.


최대의 장점은 넓은 시야와 찬스메이킹을 할수 있는 테크닉이다.

볼을 잘 다루고 드리블, 크로스 , 정확한 패스까지 완벽한 선수였다.


아게로와 비슷한 플레이를 선보였지만 좀더 미드필더적인 감각이 더 강한 카사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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