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핫한 슈퍼 루키 '킬리앙 음바페' 레알행 확률이 높은 이유

10대의 나이에 리그앙 두자리 수를 기록하고 

앙리이후 최고의 잠재력을 기대받고 있는 프랑스 유망주 선수

킬리앙 음바페.


유럽의 내노라하는 빅클럽들은 음바페를 영입하기위해

군침을 흘리고 있다.


그중에서 프랑스 덕후인 벵거감독의 아스날

그 전부터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영이에 힘쓰고 있지만 아스날로의 이적은 거의 희박하다고 볼수있다.


이유중 하나는 

'어머니는 아스널이 싫다고 하셨어'라고 신조어가 생겼는데

음바페 어머니는 아스날, 맨유보다는 레알 마드리드행을 원하기 때문


알다시피 레알의 감독은 지단이고 구단주인 페레즈를 만난후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큰 이유



음바페는 호날두의 광팬이다.

그래서 레알 팬들은 벌서부터 음바페를 자기 선수로 생각할만큼

이적이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린시절 좋아했던 선수와 같은 그라운드에서 같은팀에서 뛴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건만 맞는다면 레알행이 거의 확실하다고 본다.





박주호와 친한 일본인 축구선수는?

박주호와 친한 일본인 선수를 떠올리면 

도르트문트 팀동료인 카가와 신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이다.


하지만 그전에 마인츠에서 같이 활약한

오카자키 신지가 있다.



박주호 보다 1개월 먼저 입단한 오카자키 신지는

박주호를 위해 카레를 만들어 줄 정도로 친하다고 한다.


박주호 군면제가 달려있던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구자철과 함께 한국팀을 응원하는 사진이

구단 공식 트위터에 올라오기도 했을만큼

대표적인 친한파 일본 선수다.


한국은 금메달을 따고 박주호는 구단으로 복귀해서

오카자키 신지 개인 블로그에 축하 메세지와 함께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박주호 뿐만 아니라 구자철과도 서로 의지하면서

친한 사이라고 한다.


일부 일본 팬들도 이런 오카자키의 모습에 인성을 높이 산다며

항상웃고 있는 오카자키를 칭찬을 했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풀백, 필립 람(Philipp Lahm) 어떤 선수 였나?

이름:필립 람(Philipp Lahm)

국적:독일

출생:1983년 11월 11일(뮌헨)

주로 쓰는 발:양발

포지션:라이트 백, 수비형 미드필더


-역대 소속팀-

*유소년

FT 게언 뮌헨(1989~1995)

FC 바이에른 뮌헨(1995~2001)


*프로

FC 바이에른 뮌헨(2001~2017)

VfB 수투르가르트(2003~2005 임대)



1995년 뮌헨의 작은팀인 FT게른에서 축구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얀 핀타 유소년팀 감독의 도움으로  뮌헨 유스로 합류해 성장해갔다.

뮌헨 유스 소속으로 2번의 리그 우승을 경험하고

리저브 팀에서는 주장도 맡았다.






2001년 프로데뷔를 가졌는데 뮌헨이 아닌 슈투트가르트로 임대를 가서 프로 데뷔를 했다.

당시 주전 풀백인 안드레아스 힌켈의 백업으로 사용하기 위해 임대 되어 왔으나 

펠릭스 마가트 감독은 람을 왼쪽으로 이동시켰고

독일 국가대표인 하이코 게이버를 밀어내 주전자리를 잡았다.


리그 뿐만 아니라 챔스경기도 출전하게 되고 

독일 올해의 축구선수 후보로도 뽑혔었다.


하지만 2번째 시즌에는 큰 시련이 있었다.

새로 부임한 마티아스 잠머 감독의 전술 적응을 하지 못하고 

간간히 출장을 하면서 오른발 골절까지 당하게 되고 

십자인대까지 부상당하며 2번째시즌은 시즌 아웃이 되면서 임대생활은 끝이 났다.



복귀후 재활에 힘을 쓰게 되고 뮌헨의 유일한 왼쪽 풀백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지만

당시 뮌헨은 역사상 최악의 시즌을 경험했다.

챔스친줄권 획득 실패를 했기 때문


09/10시즌부터 본인은 오른발이 더 편하다고해서 

국가대표팀과 뮌헨에서 오른쪽으로 옮기게 되면서 세계 최고의 풀백의 자리를 자리잡았다.


거의 모든 리그경기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하며 

현대판 노예라는 말도 나올정도로 국가대표나 클럽에서도 

1순위는 필림 람이였다.


12/13시즌에는 풀백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 시즌에는 20개가 넘는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13/14시즌 펩 과르디올라가 부임했을때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주로 출전했는데

그 자리에서도 월드클래스급 활약을 펼쳤다.


로벤이 부상을 당했을때는 간간히 윙으로 올라가 공백을 메꾸기도했고

어느 자리에서나 감독이 만족할정도로 활약을 했다.


16/17시즌 분데스리가 34라운드 프라이부르크에서 은퇴경기를 치루고 

은퇴시즌 수비수 최고 평점인 2.74로 마무리했다.



만난 감독들마다 전술이해도가 좋다며 칭찬을 많이 받았다.

펩 과르디올라는 '자신이 봐온 선수중 가장 영리한 선수' 라고 할정도다.


키는 작지만 독일과 뮌헨의 세계적인 양풀백이자 중앙미드필더다.

수비수 답지 않은 화려한 개인기와 정확한 크로스, 간간히 중거리슛도 때린다.


공격가담도 좋지만 수비능력이 굉장히 좋다.

피지컬좋기보다 낮은 무게중심으로 몸싸움도 쉽게 밀리지 않는다.


더 놀라움 점은 프로 데뷔후 레드카드를 한번도 받아본적이 없는 선수다.

수비수 인데도 불구하고.


대표팀이든 클럽팀이든 람이 있고 없고 분위기 차이는 천지차이라고 한다.

타고난 중원사령관으로 그라운드에서 조직력의 중심축이되고 

막강한 수비력을 보이지만

람이 없으면 수비진이 휘청거리는게 보일 정도다.




베스티 - 두근두근(Pitapat)

아티스트:베스티

앨범명:두근두근

발매일:2013년 07월 12일

장르:댄스


추천할 곡:두근두근


YNB엔터테이먼트에서 처음으로 만든 걸그룹인 베스티

멤버 몇몇은 팬들사이에서 몸매로 인지도가 있는 편이지만

노래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베스티노래는 생각보다 좋은게 많은데

그 중에 첫 싱글앨범인 두근두근을 추천할려고 한다.


중독성이 강한 멜로디로 신나고 발랄한 이미지다.

가사가 조금 유치한 점이 있지만

멤버들의 실력이 좋아 노래와 안무가 생각보다 퀄리티가 좋다.


호불호가 강한 노래인데

노래 도입부분에 

'두근두근두근' 이부분이 싫어해 안듣는 사람도 꽤 되는것 같다.


<가사>

두근두근두근두근 두근두근두근 
두근두근두근두근 두근두근두근 
두근두근두근두근 두근두근두근 
두근두근두근두근 두근두근두근 
반짝 반짝거리는 자꾸 훔쳐보게 
되는 예쁜 입술 땜에 더워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baby 
K I S S kiss me now come on 
어쩜 너랑 어쩜 오늘 나 
오늘 난 뭔가 될 것 같아 두근 두근 
두근 Hurry Up 
어쩜 너랑 어쩜 오늘 나 
짜릿하게 달콤하게 
K I S S kiss me now come on 
속이 다 시원하다고 웃음이 터지고 
모르는 애들도 날 쳐다 본다고 
글리터 잔뜩 뿌린 하이힐 신고서 
사탕을 입에 물고 놀이터 온 
것처럼 나처럼 놀아봐 
별이 쏟아지듯이 부서지는 불빛이 
우리 위로 내리면 
K I S S kiss me now come on 
살짝 스치고부터 나를 따라오는 
너는 슈가 캔디보다 달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baby 
K I S S kiss me now come on 
두근두근두근 
Hey baby listen boy 
말로만 날 흔들고 
도망치려 하지마 
자꾸 멍 때리지 마 
어쩜 너랑 나랑 할 것 같은 이사랑 
시간 끌지 말고 
내 손 잡아 놓지 말아 
끌어안아 남자답게 
빠지면 못나오는 블랙홀 같아도 
혀끝을 톡 쏘는 레몬사탕 맛이고 
어질어질 하다고 비틀비틀 한다고 
나를 안고 가까이 더 가까이 더 와 
반짝 반짝거리는 자꾸 훔쳐보게 
되는 예쁜 입술 땜에 더워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baby 
K I S S kiss me now come on 
난 내일은 다를거야 날 만나면 넌 
또 빠지고 빠져들고 다시 길을 잃고 
살짝 스치고부터 나를 따라오는 
너는 슈가 캔디보다 달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baby 
K I S S kiss me now come on 
어쩜 너랑 어쩜 오늘 나 
오늘 난 뭔가 될것 같아 
두근두근두근두근 두근두근두근
두근두근두근



악마의 재능, 안토니오 카사노(Antonio Cassano) 어떤 선수 였나?

이름:안토니오 카사노(Antonio Cassano)

출생:1982년 7월 12일(바리)

포지션:스트라이커

키:175cm

주로 쓰는 발:오른발


역대 소속팀

AS바리(1999~2001)

AS로마(2001~2005)

레알 마드리드 CF(2005~2008)

UC 삼프도리아(2008~2011)

AC밀란(2011~2012)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2012~2013)

파르마 FC(2013~2015)

UC삼프도리아(2015~2017)

헬라스 베로나(2017 은퇴)



빈민가에서 태어난 카사노는 어릴때부터 좋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카사노 어머니가 카사노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버리고 도망치게 되면서 홀어머니 밑에서 컸다.


그렇게 유명한 축구선수가 되고 아버지가 찾아왔지만

카사노는 욕하고 때리면서 내쫓았다고 한다.


AS바리에 입단제의가 들어와 입단하게 되고

1999/20 시즌 18세의 나이로 1군팀에 데뷔를 했다.

인테르 상대로 상대 수비수를 무력화시킨 플레이로 이탈리아는 들썩 거렸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자연스럽게 빅클럽이 관심을 가지게 됬고 

2001년 AS로마로 이적하게 된다.




토티와 엄청난 콤비 플레이를 보이면서 최고의 활약을 이어갔다.

토티는 '함께 뛰었던 선수중 최고의 테크니션'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역대 베스트에 들어가는 콤비로 활약하면서 01/02, 03/04시즌 준우승을 했다.

테크니션으로 뛰어난 두 선수가 1선과 2선을 왔다갔다 하면서 

플레이를 펼치면 눈이 즐거울 정도였다.


당시 감독이였던 아버지처럼 여긴 카펠로 감독의 말을 잘 들었지만

카펠로 감독이 떠나면서 또라이 기질이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감독들은 컨트롤하기가 점점 어려워 지면서 

많이 다투게 되면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되는데


당시 토티에게 한마디 없이 이적해서 토티는 많이 서운했다고 한다.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생황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당시 카사노의 은사인 카펠로가 감독이여서 잘 컨트롤할줄 알았지만

그때 당시의 똘끼는 절정이였던 시기라 카펠로 마저도 서로 다투게 됬다.

방송에서 카펠로 감독을 뒷담화를 하는등 

카펠로에게 징계를 받기도 하고 체중증가할때마다 벌금을 내는 조치도 당하게된다.


그렇게 카사노는 AS로마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로마는 관심이 없었고

시즌중 삼프도리아로 임대를 가게 된다.




삼프도리아로 임대이적후 복잡했던 여자 관계를 청산하고 

수구 출신 수구계의 가투소인 카롤리나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사람이 확 달라졌다.


토티-카사노 콤비만큼은 아니지만

지암파올로 파찌니와 콤보를 이루면서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보여주면서

카사노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걸 보여줬다.

그렇게 삼프도리아는 챔스진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정상인 카사노는 오래가지 못했다.

구단주와 큰 불화가 생기면서 팀에서 쫒길 지경까지 가게 되고

2011년 1월 AS밀란으로 이적하게 되고


그해 삼프도리아는 2부리그로 추락하게 됬다.



당시 AC밀란은 쉐드로프와 호나우지뉴가 나이가 들어 젊은 피가 필요했다.

이 두선수를 제외하고는 창의성이 있는 선수가 전무했기 때문에

서로에게 윈윈인 이적이 성사가 된것이다.


악마의 재능 답게 초반부터 좋은 활약을 펼치게 되고

즐라탄과의 호흡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게 되면서 밀란은 엄청난 공격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AS로마 경기후 원인불명으로 쓰러지게 되고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뇌경색이라는 소문이 나왔지만 AC밀란은 크게 부정을 하게 된다.

실제로는 심장에 구멍이 뚫려 수술을 하게 되고 몸을 회복하는데 집중을 한다.


회복후 유로2012대회에 대표팀으로 활약을 하게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90분을 뛰지도 못하고 망나니인 카사노를 합류하는데 

큰 반대가 있었지만 클래스는 여전했다.

여전히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탈리아는 결승에서 스페인이게 패하게 된다.


대회 종료 직후 인테르의 지암파올로 파치니와 트레이드로 이적하게 된다.



많은 팬들은 예상치도 못한 이적에 많이 놀랬다.

파치니도 비록 나쁘지 않는 공격수지만 카사노에 비해 활약이 미비했기 때문이다.


AC밀란 팬들은 분노를 했다.

심장수술후 재활까지 기다려 줬는데 라이벌팀인 인터밀란으로 이적했기 때문.

그래서 베를루스코니는 엄청난 욕을 먹었다.


시즌 초반에는 좋은 모습을 보였줬지만 후반기에는 체력이 떨어지면서 

부상도 겹치게 되었지만 그레도 36경기 8골 12도움이라는 좋은 활약을 했다.


하지만 시즌후 새로 부임한 마짜리가 카사노를 쓰지 않겠다고 해서

FC파르마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30살의 나이에도 루카 토니와 호흡을 맞추면서 좋은 활약을 펼치게 된다.

 11골 6어시를 하게 되면서 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체중감량까지 하면서 대표팀에 대한 열의가 있어 

드디어 월드컵에 나가게 됬지만 좋은 활약을 펼치진 못했다.


하지만 파르마는 14-15시즌 구단매각문제가 잘 풀리지 않게 되고

연봉도 받지 못하게 되면서 카사노는 자유계약으로 방출당하게 된다.


7개월동안 무적상태로 있게 되면서 좋은 추억이 있었던 

삼프도리아로 2년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15-16시즌에는 선발과 교체로 번갈아가 출전하면서 25경기 2골 5어시를 기록하면서 

별 사고 없이 지내는듯 했지만 역시나 구단 회상 대리인과 충돌이 생기면서 

또다시 계약해지를 요청해 무적신세가 된다.


그 이후 중국리그나 은퇴를 한다는 손문이 돌았지만

중국은 가기 싫고 세리에에 남고 싶다고 말하면서 커리어 마지막팀인 베로나로 이적하게 된다.


하지만 계약한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몸상태가 좋지 않아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

구단측은 기다려 주겠다고 하지만 은퇴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



별 사고 없이 제대로 성장했다면 역대급 이탈리아 판타지스타의 계보를 이을 수 있었다.

전방 공격수이지만 창의적인 패스로 득점보다 어시스트가 빛이 났던 선수다.

그래서 중앙뿐만 아니라 측면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기도 했다.


최대의 장점은 넓은 시야와 찬스메이킹을 할수 있는 테크닉이다.

볼을 잘 다루고 드리블, 크로스 , 정확한 패스까지 완벽한 선수였다.


아게로와 비슷한 플레이를 선보였지만 좀더 미드필더적인 감각이 더 강한 카사노였다.




미겔 페레스 쿠에스타(미추-Miguel 'Michu' Pérez Cuesta)어떤 선수였나?

이름:미겔 페레스 쿠에스타(미추-Miguel 'Michu


' Pérez Cuesta)

출생:1986년 3월 21일(오비에도)

키:188cm

포지션:공격형 미드필더, 스트라이커


역대 소속팀

레알 오비에도(2003~2007)

레알 클럽 셀타 데 비고B(2007~2008)

레알 크럽 셀타 데 비고(2008~2011)

라요 바예카노(2011~2012)

스완지 시티 AFC(2012~2015)

SSC 나폴리(2014~2015 임대)

UP랑그레오(2015~2016)

레알 오비에도(2016~2017)


미추가 전세계적으로 그리고 대한민국에 알려진 시기가 2012-13시즌

스완지 최고의 영입으로 스완지 돌풍을 이끌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부상으로 폼이 떨어지게 되면서 반짝하고 잊혀진 선수다.


연고지역인 레알 오비에도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내면서 프로데뷔를 했다.


2007년 셀타 데 비고로 이적을 하게 되면서 좋은 활약을 펼치게 되면서

계약 만료후 1부 라요 바예카노로 이적해서

37경기 15골이라는 엄청난 활약을 펼치면서 

팀의 잔류를 성공하게 된다.


골결정력이 좋았던 미추는 자연스럽게 프리미어리그 스완지시티가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엄청난 활약을 펼쳐 스완지는 돌풍을 일으키게 된다.



데뷔 경기인 QPR전부터 엄청난 활약을 펼치더니 

당시 반 페르시와 득점 공동1등에도 오르면서 득점왕 경쟁에 들어가기도 했다.

아스날 원정경기에서도 2골을 넣고 당시 리그 22경기 13골을 기록하며 

팀내 득점 1위를 했다.


당시 900억 이적료를 가지고 첼시로 이적한 토레스와 비교되면서

언론에서는 최고의 영입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덕에 2013년 10월 6일 다비드비야 부상으로 

대체 선수로 발탁되 브라질 월드컵 유럽 예선 벨라루스전에 

A매치 데뷔전을 치루었다.


하지만 2013-14 시즌부터 부상이 겹치게 되면서 점점 소속팀 출전횟수도 줄어들고

한시즌 반짝만 하고 2014년 7월 나폴리로 임대를 가게 된다.



나폴리에서 부활을 꿈꿨지만 3경기만 출전을 하고 거의 출전을 못하게 되면서

2015년 11월 스완지와 상호 계약해지를 하게 됬다.


계속해서 부상을 이겨내지 못해 스페인4부리그인 

친형이 있는 랑그레오로 이적해 부상회복에 집중하겠다고 다짐을하고 

다시 한번 프리미어리그 입성을 꿈을 꾸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고 고향팀인 레알 오비에도가 손을 내밀어 

고향팀으로 복귀를 했다.


그렇게 결국 폼을 올라오지 못해 이른 나이에 2017년 17일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인해 은퇴를 하게 되었다.






썸머퀸 '씨스타(Sistar)' 어떤 그룹이였나?

그룹명:Sistar(씨스타)

그룹 활동기간:2010년 6월 4일 ~ 2017년 6월 4일


-멤버-

효린(김효정) - 리더, 메인보컬

소유(강지현) - 리드보컬

다솜(김다솜) - 서브보컬

보라(윤보라) - 메인래퍼


씨스타 그룹명의 의미는 시스터(Sister) + 스타(Star)의 합성어로

가요계의 큰별이 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데뷔하기전 처음 얼굴을 공개한것은 2010년 3월 19일

패션잡지 '쎄시' 화보를 통해서 공개되었다.


2010년 6월 3일 싱글 'Push Push'로 데뷔

2010년 9월 두번째 싱글 '가식 걸' 발매

2010년 12월 세번째 싱글 '니 까짓게'

2011년 5월 씨스타 19 유닛그룹 'Ma Boy'

2011년 8월 첫 정규앨범 'So Cool' 발매

2012년 4월 첫EP 앨범 '나혼자'

2013년 6월 두번째 정규앨범 'Give Me To Me'

2014년 두번째ep앨범 'Touch N Move'

2014년 8월 스페셜 앨범 타이틀곡 'I Swear'

2015년 6월 22일 세번째EP앨범 'Shake It'

2016년 6월 21일 네번째 ep앨범 '沒我愛 (몰아애)'

2017년 5월 31일 디지털 싱글 'LONELY'

끝으로 은퇴를 했다.


데뷔이후로 낸 타이틀 곡중 한곡도 망한적이 없다.

앨범을 발매를 하면 항상 상위권을 유지를 해서 

한때는 사재기를 하는게 아니냐 라는 의심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사랑을 받았음애도 불구 하고 다른 그룹에 비해 

팬덤이 약하다는게 단점이였다.

기존 아이돌과는 다르게 섹시 이미지가 강했고 걸크러쉬 이미지도 있었지만

실력이 좋았기에 모든 연령층으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그룹이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카라같이 귀여운 걸그룹들이 인기가 많았지만

 건강한 섹시미가 유행이 오게 되면서 더욱더 시스타는 몸매로 넘사벽이였다.


대표적으로 보라는 아육대에 출연하게 되면서 

체육돌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 

그 이후로 모든 맴버들은 운동을 열심히 한 결과 

남성들에게는 섹시한 이미지

여성들에게는 닮고 싶은 몸매로 인기를 얻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그룹으로 해체되는 점은 굉장히 아쉽다.

데뷔이후로 멤버간 불화설도 없었고

탈퇴를 하거나 새로 맴버가 들어오거나 한적도 없고

털털하고 가식없는 성격들로 호감있는 그룹이였다.


개인 활동들이 많아지면서 2013년 까지 숙소에서 같이 살고 그 이후로는 독립했다고 한다.


2017년 5월23일 공식 팬카페에 각 멤버들 손편지를 올리게되면서

해체 공식선언을 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 했다.


앞으로 씨스타 같은 걸그룹은 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호나우두(Ronaldo) 어떤 선수 였나?

이름:호나우두(Ronaldo)

국적:브라질

출생:1976년 9월 22일(라우데자네이루)

키:181cm

주로 쓰는 발:오른발

포지션:스트라이커


-역대 소속팀-

*유스

테니스 클럽 바우케이레(1986~1989)

소셜 하무스 클럽(1989~1990)

상크리스토방 FR(1990~1993)


*프로

크루제이루 EC(1993~1994)

PSV (1994~1996)

FC 바르셀로나(1996~1997)

인테르나치오날레(1997~2002)

레알 마드리드 CF (2002~2007)

AC밀란(2007~2008)

SC 코린치안스(2009~2011)


*별명:R9, FENOMENO, 축구황제


R9은 나이키가 세계 축구시장의 중요성을 깨닫고 1990년대초 주가가 한창 오르던

호나우두를 앞세워 마케팅을 하게 된다.

R9이라는 네이밍을 통해 수많은 모델을 내놓았는데

그 일환으로 생긴것인 머큐리얼 시리즈다.


그 이후 호나우지뉴가 있었고 지금은 CR7인 크리스티아노 호날두가 메인으로 있다.



FENOMONO는 이탈리아 시절 축구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호나우두를 상징하는 고유 명사로 사용됬으며

영어로 풀이하면 경이러운 존재라는 뜻이다.


호나우두는 빈민가 출신으로 대부분의 브라질리언의 축구인들은 어린 시절 유일한 희망은 축구공이다.

벌어진 앞니 때문에 내성적인 성격이였는데 축구공만 잡으면 생기가 넘쳐났다고 한다.


1986년 처음 유소년 축구클럽에 입단하고 엄청난 득점력을 보이면서

지역전체 소문이 퍼져 유명해 졌다.

그 이후 1990년 14세의 나이로 브라질 2부리그 상 크리스토방과 계약을 맺었고

당시 감독은 경기가 풀리지 않을때는 '무조건 호나우두한테 패스해!'라고 할정도로 

골 폭격은 2부리그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원래는 어린 시절 응원했던 플라멩구에 입단하기 위해 초정장을 가지고 갔는데.

가는 도중 깡패를 만나 초청장을 뺏겨 못갔었다.



그 당시 브라질 대표 레전드 선수인 자일지뉴가 호나우두의 재능을 알아보고

후나우두를 지원하게 되는데 브라질 U-17대표로 선발도 되고

1993년 남미 청소년 대회 득점왕도 차지했다.


이러한 활약덕에 브라질 명문 클럽들은 호나우두 영입 경쟁을 하게 된다.

크루제이루가 영입에 성공하게 되고 유스팀에서 가볍게 활약을 하면서

16살의 나이에 1군에 합류하게 된다.


1993년 성인 대표팀에 뽑히고 1994년 만17세의 나이로 A매치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크루제이루에서 60경기 58골을 넣으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시작해서

대표팀 선배인 호마리우의 조언을 듣고 PSV에 이적하게 된다.



PSV는 에레디비지를 찢어 놓았던 호마리우의 좋은 추억을 갖고 잇어서

호나우두도 호마리우 처럼 활약해 주길 기대했다.


역시나 데뷔시즌에(94/95시즌) 32경기 30골을 몰아쳤다.

하지만...95/96시즌에 무릎 수술을 받게 되면서 부상의 악몽이 여기서 부터 시작했다.

부상인 와중에도 19경기 12골을 넣긴 했다.


부상회복후 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 자신의 존재를 전세계에 알려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된다.




1시즌밖에 활약하지 않았지만 그 임팩트는 상당했다.

49경기 47골을 퍼 부으며 팬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기록은 메시가 10/11시즌 최다골을 깨기전까지 계속 유지 되었다.


그 해에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고

발롱도르는 2위를 차지했다.


이떄 나이는 20살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게 스페인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은 계속 보길 원했으나

호나우두는 팀을 떠나고 싶어 했다.


브라질에서 떠나기전부터 러브콜을 보내왔던 인테르 구단주 모라타가 있었다.



인터밀란 이적후 활약도 대단했다.

첫시즌부터 32경기 25골을 퍼붓고 리그 최우수 외국인 선수, 리그 MVP선정을했고

UEFA컵 우승컵도 들었다.

94년 이후 4년만에 인테르는 우승컵을 들었다.


대단한 이유는 당시 세리에A는 공격수의 무덤이라 불리울 정도로

견고한 수비와 거친 몸싸움으로 유명한곳이였다.

하지만 호나우두는 상대 수비진을 농락하면서 사기캐로 군림하였다.


1997년 또 한번 피파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고 

발롱도르 역대 최연소 수상도 기록하게 된다.


하지만 계속 되는 부상으로 인해 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재활 센터에 보내게 된다.

첫시즌을 제외하고는 날려버린거나 다름없었다.


구단주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출전시간을 조절하면서 몸을 끌어 올린뒤

2002년 월드컵에 출전에 득점왕을 차지하고 부활을 알렸다.

인테르 팬들은 당연히 인테르에서 앞으로 계속 활약할 것이라고 믿었으나

팬들의 염원을 저버리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된다.



갈락티코 정책으로 이적하게 되면서 첫시즌 23골을 퍼부어 리그 우승을 하게 된다.

그 해에 피파 올해의 선수상, 발롱도르를 또 수상하게 된다.

(2002년 피파 월드컵 활약이 컸다)


역시 전설의 경기는 3샷 3킬을한 맨유와의 경기다.

챔스8강전에 3슛 3골로 맨유를 이기게 되는데 에릭 칸토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레알 팬들은 물론 맨유팬들도 경기가 끝난후 기립 박수를 했다


하지만 이러한 활약을 오래가지 못했다.

04/05시즌 체중이 급격히 늘어나게 되면서 경기력은 하락했다.

그 이유는 갑상선 저하로 인해 체중이 늘었났지만 또 다른 이유는 

식탐도 대단했다고 한다.

그 뿐만아니라 경기장안밖으로 게으른 태도를 보이며 팬들로 부터 비난을 많이 받았다.

 반니가 영입되면서 호나우두는 점점 잊혀지게 된다.


06/07시즌 AC밀란으로 이적

당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던 AC밀란 의료진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체중감량에 성공을 하고 잔 부상을 치료 했다.

14경기 7골 4도움을 기록해 부활을 신호탄을 당겼으나 07/08다시한번 부상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계속해서 부상이 재발하게 되고 AC밀란은 끝가지 부활을 지원하며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브라질에서 마약, 섹스 스캔들이 터지게 되면서 AC밀란은 재계약을 포기하게 된다.

지금은 잊혀졌지만 매춘부 3명을 고용해서 코카인을 사오라고 시켰다고 한다.

당시는 엄청난 큰 사건이였다.


2008년 12월 귀향을 하게 되면서 코린치안스로 이적했다.

순수하게 축구를 즐기고 싶어했다.

09시즌에 대표팀 선발 얘기가 나올정도로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10시즌에는 

느리고 부지런하지 못한 플레이로 팬들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2011년 2월 14일 은퇴를 하게 된다.





역대급 드리블, 슈팅, 라인 브레이킹, 피지컬 스트라이커에 필요한 모든 요소가 있던 사기 스트라이커였다.


181CM의 키의 단단한 선수가 카카보다 빠르고 마라도나처럼 드리블 하며 

아드리아누처럼 슛을 때렸다.


그냥 사기캐


항상 줄서서 먹는 '원조 해운대 막창집' 후기

7월 12일 초복날 가족과 함께 

집근처 맛집 해운대 막창을 갔다.


약 10년전부터 단골집이였는데

나는 7년만에 다시 가본 집이였다.


원래는 조그마한 가게였는데 입소문과 SNS, 블로그홍보가 

되면서 관광객들이 줄을서서 먹기 시작한 곳이다.


저녁시간대가 되면 항상 줄이 있는걸 볼수 있다.


우리는 운이 좋게 5분만 줄을 서고 들어갔다.

안에도 북적북적 된다.



밑반찬은 간단하게 나온다.

해초무침? 이랑 파김치 

그리고 횟집에서는 흔하게 볼수 있는 메추리알 ㅎㅎ

보자마자 뜯어 먹어서 사진은 이쁘지 않다.



내가 먹지 못하는 오이

그리고 당근, 땡초 


정말 간단하다.



그리고 양파


근데 고기에 양념이 다 되있어서 소스에 찍어먹기 보다는

양파와 같이 느끼함을 날려 버리기 위해 

같이 먹으면 좋다.



크~

대창과 막창이다.

마늘양념에 절인 부위들이 아주 쎈 불에 올라간다.


여기 직원분들이 직접 올려주고 

구워주신다.



하지만

워낙 바쁘다 보니 가만히 두면 탈수 있으니 

셀프로 구웠다...


오랜만에 먹어서 역시 맛은 있었지만

이제 다시는 안갈거 같다...


많이 아쉽다.


그래도 오래전부터 단골로 있었던 곳인데

조금 불친절하고 주인분도 표정이 좋지 않아

직원분들도 좋지 않으시고

기분은 그닥 좋지 않았다.


예전에는 나이드신 분들, 젊은 분들

동네 주민분들이 자주 찾는 곳이였지만


지금은 관광하러온 젊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서비스질은 떨어지고

초심을 잃으신거 같아 많이 아쉽다.


맛은있다.




킹(King), 티에리 앙리(Thierry Daniel Henry)어떤 선수였나?

이름:티에리 앙리(Thierry Daniel Henry)

국적:프랑스

출생:1977년 8월 17일(레줄리)

키:188cm

 포지션:스트라이커, 윙포워드

선호 하는 등번호:12번(국가대표)

(마르코 판 바스턴을 존경해 국가대표에서 12번을 달고 뛰었다)


-역대 클럽-

*유소년 클럽

CO 레줄리(1983~1989)

US 팔레조(1989~1990)

ES 비리 샤티용(1990~1992)

클레르퐁텐(1992)

AS모나코(1992~1994)


*프로

AS모나코(1994~1999)

유벤투스 FC(1999)

아스날 FC(1999~2007)

FC 바르셀로나(2007~2010)

뉴욕 레드불스(2010~2014)

아스날 FC(2012 임대)


국가대표기록:123경기 51골

프랑스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다.


아스날, 프랑스 국가대표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의 선수이자

가장 많은 득점왕을 기록한 전설적인 공격수



1977년 8월 17일 레줄리에서 태어났는데

같은 국가대표 선수 윌리엄 갈라스와 생일이 똑같다.

1992년에는 클레르퐁텐이라는 유스팀에서 같이 있기도 했고 

그 이후 아스날에서 재회하게 된다.


레줄리는 빈민가 지역이라 자연스럽게 앙리는 불량 청소년들과 어울리게 되고

TITI(불량소년) 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악명을 떨쳤다고 한다.




1992년 클레르퐁텐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AS모나코가 바로 유스팀으로 영입하게 된다.

이때 영입한 감독이 아르센 벵거였다.

벵거는 1987년부터 모나코 감독이였다.


1994년 8월 니스와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를 치르게 되고 한달뒤에 벵거는 해임당하게 된다.

하지만 그 후임 감독에게도 신회를 받으며 

96-97시즌에는 리그와 컵우승을 하게 되면서 

커리어 첫 우승과 더블을 기록하게 된다.


모나코에서 141경기 28골 37어시를 하게 되고


1999년 겨울 이적시장에서 유벤투스로 이적하게 된다.



유벤투스는 당시 델 피에로가 장기 부상으로 시즌 아웃이 되면서 

급하게 앙리를 영입했다.


하지만 유벤투스의 앙리는 암흑기였다.

앙리의 장점은 돌파력과 스피드 그리고 준수한 골 결정력인데

모나코에서도 스트라이커로 활약을 했지만

유벤투스에서는 윙으로 출전하게 되면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당시 유벤투스 감독으로 새로 부임한 안첼로티가 단장한테 

'앙리는 스트라이커를 소화 할수 있냐'라고 물어보았는데 단장은 

'윙 밖에 뛰지 못한다'라고 말하게 되면서 스트라이커로 써보지도 않고 팔게 된다.


그렇게 위기에 빠진 앙리를 구한 사람은 프로데뷔를 시킨 벵거였다.

당시 아넬카를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시킨 자금으로 앙리를 영입하게 된다.



이적후 앙리는 적응하는데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일단 자신을 데뷔시켜준 벵거감독과

비에이라, 프티 프랑스 국대 동료들과 베르캄프라는 최고의 테크니션도 있었다.


03/04, 04/05, 05/06 3연속 득점왕을 차지하고 

01/02시즌 포함하여 총 4번의 득점왕을 차지하게 된다.


02/03시즌에는 시즌 막판 반니 스텔루이가 PK를 몰아치면서 간신히 득점왕을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그 시즌 마저도 24골 23어시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기게 된다.


그래도 최고의 전성기 시절은 03/04시즌 무패우승

30골로 득점왕 차지한 시절이다.


그러나 내리막길도 분명히 있다.

06/07시즌에는 아스날의 에미레이츠 이전 정책으로 긴축재정에 들어가

선수들을 하나 둘씩 정리하게 되고 나이가 들어 은퇴한 동료들

피레스는 비야레알로 솔 캠벨은 포츠머스, 에슐리 콜은 첼시 등등...


그리고 제일 큰 문제는 당시 앙리는 벤치에 앉는걸 굉장히 싫어 했는데

작은부상이 있어도 풀타임으로 경기를 뛰고

아스날에서는 월드컵을 풀타임을 뛴 앙리를 보호하기 위해 벤치에 앉혔지만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는 친선경기에서도 풀타임을 소화 시켰다.

그러다보니 몸에 무리가와 시즌 중반 부상으로 이탈하게 되고 시즌 아웃하게 된다.


그 시즌이 끝나고 무한도전을 찍었었다.


그리곤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바르셀로나 메디컬 체크에서 의료진이 '

'어떻게 이런몸으로 축구를 했냐' 라고 할 정도로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였다.

부상을 안고 계속 해서 경기를 뛰다보니 

아스날 마지막 시즌은 그냥 날려버린건 이 때문이다.


당시 메시, 에투, 앙리 라인으로 스탯 놀이가 시작했다.

앙리팬으로써 아쉬운 점은 왼쪽 공격수로 뛰었다는 점인데

유벤투스때와는 달리 경험이 많은 앙리는 그 자리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08/09시즌에는 챔스 우승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09/10시즌에는 피지컬적으로 폼이 하락해서 당시 페드로한테 주전을 밀리게 된다.

그리고 다비드 비야가 영입되면서 팀을 떠날수 밖에 없었고


2010년 여름 뉴욕 레드불스로 이적했다.


첫시즌 활약은 그다시 좋지 않았지만

역시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18경기 11골을 넣게 되면서 이름 값을 했다.


미국 시즌이 끝나고 2012년 1월 부터 2개월간 아스날에 임대를 가게 된다

당시 박주영이 있던 시절인데

아스날 공격수들이 좋은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팀 역시 좋은 성적을 유지못해

5년만에 앙리를 부르게 된다.


그렇게 프리미어리그 통산 기록 1골을 더 올리게 된다.


다시 뉴욕 레드불스로 복귀하면서 더 좋은 활약으로 

25경기 15골 12어시를 기록


2014시즌 끝으로 은퇴를 하게 된다.


현재는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부임하고 있다.



플레이 스타일은 엄청나게 빠른 스피드와 파워로 돌파를 하고 공간침투를 잘했다.

거기다 골 결정력이 좋아 득점왕도 많이 차지 했는데

어시스트 능력도 좋아 20-20 클럽에 가입하기도 했다.


특히 앙리의 전매특허 감아차기는 엄청나다 

'앙리존'이라는 말이 나올정도 오른발로 감아차기는 명품 슛팅이다.

부드럽고 침착하고 정확한 슛을 하는걸로 유명하다.


베르캄프의 영향을 받아서 인지 몰라도 플레이메이킹 능력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