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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King), 티에리 앙리(Thierry Daniel Henry)어떤 선수였나?

스포츠

by 심쿠웅 2017. 7. 1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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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티에리 앙리(Thierry Daniel Henry)

국적:프랑스

출생:1977년 8월 17일(레줄리)

키:188cm

 포지션:스트라이커, 윙포워드

선호 하는 등번호:12번(국가대표)

(마르코 판 바스턴을 존경해 국가대표에서 12번을 달고 뛰었다)


-역대 클럽-

*유소년 클럽

CO 레줄리(1983~1989)

US 팔레조(1989~1990)

ES 비리 샤티용(1990~1992)

클레르퐁텐(1992)

AS모나코(1992~1994)


*프로

AS모나코(1994~1999)

유벤투스 FC(1999)

아스날 FC(1999~2007)

FC 바르셀로나(2007~2010)

뉴욕 레드불스(2010~2014)

아스날 FC(2012 임대)


국가대표기록:123경기 51골

프랑스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다.


아스날, 프랑스 국가대표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의 선수이자

가장 많은 득점왕을 기록한 전설적인 공격수



1977년 8월 17일 레줄리에서 태어났는데

같은 국가대표 선수 윌리엄 갈라스와 생일이 똑같다.

1992년에는 클레르퐁텐이라는 유스팀에서 같이 있기도 했고 

그 이후 아스날에서 재회하게 된다.


레줄리는 빈민가 지역이라 자연스럽게 앙리는 불량 청소년들과 어울리게 되고

TITI(불량소년) 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악명을 떨쳤다고 한다.




1992년 클레르퐁텐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AS모나코가 바로 유스팀으로 영입하게 된다.

이때 영입한 감독이 아르센 벵거였다.

벵거는 1987년부터 모나코 감독이였다.


1994년 8월 니스와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를 치르게 되고 한달뒤에 벵거는 해임당하게 된다.

하지만 그 후임 감독에게도 신회를 받으며 

96-97시즌에는 리그와 컵우승을 하게 되면서 

커리어 첫 우승과 더블을 기록하게 된다.


모나코에서 141경기 28골 37어시를 하게 되고


1999년 겨울 이적시장에서 유벤투스로 이적하게 된다.



유벤투스는 당시 델 피에로가 장기 부상으로 시즌 아웃이 되면서 

급하게 앙리를 영입했다.


하지만 유벤투스의 앙리는 암흑기였다.

앙리의 장점은 돌파력과 스피드 그리고 준수한 골 결정력인데

모나코에서도 스트라이커로 활약을 했지만

유벤투스에서는 윙으로 출전하게 되면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당시 유벤투스 감독으로 새로 부임한 안첼로티가 단장한테 

'앙리는 스트라이커를 소화 할수 있냐'라고 물어보았는데 단장은 

'윙 밖에 뛰지 못한다'라고 말하게 되면서 스트라이커로 써보지도 않고 팔게 된다.


그렇게 위기에 빠진 앙리를 구한 사람은 프로데뷔를 시킨 벵거였다.

당시 아넬카를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시킨 자금으로 앙리를 영입하게 된다.



이적후 앙리는 적응하는데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일단 자신을 데뷔시켜준 벵거감독과

비에이라, 프티 프랑스 국대 동료들과 베르캄프라는 최고의 테크니션도 있었다.


03/04, 04/05, 05/06 3연속 득점왕을 차지하고 

01/02시즌 포함하여 총 4번의 득점왕을 차지하게 된다.


02/03시즌에는 시즌 막판 반니 스텔루이가 PK를 몰아치면서 간신히 득점왕을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그 시즌 마저도 24골 23어시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기게 된다.


그래도 최고의 전성기 시절은 03/04시즌 무패우승

30골로 득점왕 차지한 시절이다.


그러나 내리막길도 분명히 있다.

06/07시즌에는 아스날의 에미레이츠 이전 정책으로 긴축재정에 들어가

선수들을 하나 둘씩 정리하게 되고 나이가 들어 은퇴한 동료들

피레스는 비야레알로 솔 캠벨은 포츠머스, 에슐리 콜은 첼시 등등...


그리고 제일 큰 문제는 당시 앙리는 벤치에 앉는걸 굉장히 싫어 했는데

작은부상이 있어도 풀타임으로 경기를 뛰고

아스날에서는 월드컵을 풀타임을 뛴 앙리를 보호하기 위해 벤치에 앉혔지만

프랑스 국가대표팀에서는 친선경기에서도 풀타임을 소화 시켰다.

그러다보니 몸에 무리가와 시즌 중반 부상으로 이탈하게 되고 시즌 아웃하게 된다.


그 시즌이 끝나고 무한도전을 찍었었다.


그리곤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바르셀로나 메디컬 체크에서 의료진이 '

'어떻게 이런몸으로 축구를 했냐' 라고 할 정도로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였다.

부상을 안고 계속 해서 경기를 뛰다보니 

아스날 마지막 시즌은 그냥 날려버린건 이 때문이다.


당시 메시, 에투, 앙리 라인으로 스탯 놀이가 시작했다.

앙리팬으로써 아쉬운 점은 왼쪽 공격수로 뛰었다는 점인데

유벤투스때와는 달리 경험이 많은 앙리는 그 자리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08/09시즌에는 챔스 우승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09/10시즌에는 피지컬적으로 폼이 하락해서 당시 페드로한테 주전을 밀리게 된다.

그리고 다비드 비야가 영입되면서 팀을 떠날수 밖에 없었고


2010년 여름 뉴욕 레드불스로 이적했다.


첫시즌 활약은 그다시 좋지 않았지만

역시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18경기 11골을 넣게 되면서 이름 값을 했다.


미국 시즌이 끝나고 2012년 1월 부터 2개월간 아스날에 임대를 가게 된다

당시 박주영이 있던 시절인데

아스날 공격수들이 좋은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팀 역시 좋은 성적을 유지못해

5년만에 앙리를 부르게 된다.


그렇게 프리미어리그 통산 기록 1골을 더 올리게 된다.


다시 뉴욕 레드불스로 복귀하면서 더 좋은 활약으로 

25경기 15골 12어시를 기록


2014시즌 끝으로 은퇴를 하게 된다.


현재는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부임하고 있다.



플레이 스타일은 엄청나게 빠른 스피드와 파워로 돌파를 하고 공간침투를 잘했다.

거기다 골 결정력이 좋아 득점왕도 많이 차지 했는데

어시스트 능력도 좋아 20-20 클럽에 가입하기도 했다.


특히 앙리의 전매특허 감아차기는 엄청나다 

'앙리존'이라는 말이 나올정도 오른발로 감아차기는 명품 슛팅이다.

부드럽고 침착하고 정확한 슛을 하는걸로 유명하다.


베르캄프의 영향을 받아서 인지 몰라도 플레이메이킹 능력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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